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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경 찻사발 축제

    문경 도자기 역사

    문경 도자기의 역사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고려시대의 청자편의 특징으로 보아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와 초노은리의 가마터는 11세기에서 12세기 경에 활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은읍 완장리 가마터는 14세기말에서 15세기 초에 흙을 구워서 도자기를 구운 활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완장리 가마터는 상감청자의 주제 문양인 초문과 유로수금문이 인화기법의 연판문과 여의두문과 함께 시문 된 청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전기인 15세기에 분청사기를 제작한 곳으로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가마터가 있습니다. 생달리 가마터에서는 집단연권형의 인화문을 빼곡하게 장식한 분청사기가 수습되었습니다. 집단연권 인화문은 조선 전기에 각 도의 군현이 중앙에 세금으로 납부한 공납 자기의 특징입니다. 조선시대의 백자는 16세기에서 17세기 문경읍 용연리와 갈평리와 관음리와 동로면 노은리가 있습니다. 용연리 백자공방지에서 발견된 유구들은 백자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하였습니다. 문경지역에서 임진왜란 전에 만들어진 백자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백자가마는 가은읍 완장리와 원북리와 문경읍 평천리와 갈평리와 충평리와 관음리와 동로면 생달리와 노은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마의 밀집도가 굉장히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민요의 요람

    문경이 민요의 요람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886년입니다. 광주 분원 등 관아에서 운영하던 사기 가마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 문경 지방에 들어온 도공들과 초기 관요의 도공으로부터 기술을 배운 1840년대 문경에 살고 있던 김교수와 김순경 등의 도자기 제조기술이 후대에 전수되면서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민간에서 사사로이 도자기를 굽던 가마인 민요는 사회적 요인에 의해 계속 번성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문경 도자기 수공업의 발달은 경북지방의 일반 민가에도 보급시킬 수 있었습니다. 문경의 도자기는 18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비로소 서민의 도자기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문경 도자기는 우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사발, 대접, 접시, 병, 제기, 종지 등으로 사용되는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화려함과 기술적인 요소보다는 실용적은 부분을 생각하여 만들었습니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도자기였습니다. 이러한 민요로서의 문경 도자기가 오늘날의 찻사발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문경의 도자기는 문경지역 특유의 칸 가마인 전통 망댕이 장작가마로 벽돌 따위를 구워 만듭니다. 망댕이 가마란 길이가 25cm이고 지름이 13cm 정도로 뭉친 흙덩어리로 15도 정도의 경사로에 5칸이나 6칸 정도를 쌓아 만든 것을 말합니다. 명품 문경찻사발 작품의 무난함은 이러한 망댕이로 만든 특유의 가마구조에 따른 가마 속의 변화의 변화무쌍함 때문에 원로에서부터 신진 사기장에 이르기까지 전통을 토대로 현대적인 감각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품격 있는 디자인으로 생활도자기와 찻그릇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문경 찻사발 축제

    찻사발이란 차를 마시는 사발이나 주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완 또는 차완이라고 불려지기도 하는데 보통 다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사발은 흔히 소우주라고 부릅니다. 우주를 담을 수 있고 철학과 사유가 서린 선의 결정체라고 합니다. 사발의 바깥선이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이 마치 용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용승선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용승선을 무한대로 잇게 되면 글자 그대로 무한대의 우주공간입니다. 사발의 굽은 삼라만상을 받치는 지구의 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차의 기원은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서기 48년 7월 27일 인도에서 금, 은, 보화 등과 함께 차를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661년 3월 제사에 술과 단술을 빚고 떡, 밥, 차, 과일 등의 음식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나라별로 차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의 옛 고분에서 전차가 발견되고 차를 끓이던 이동식 화덕이 있었습니다. 현재 이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백제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부분을 생각하면 차를 마시던 생활 습관이 유행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라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흥덕왕 3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찻씨를 가져와 이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차는 이보다 훨씬 이전인 선덕왕 때부터 유행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설총의 화왕계에는 신문왕에게 진언하기를 술과 차를 정신을 맑게 해야 한다고 차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경의 역사와 차 문화로 인해 문경 찻사발 축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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